《투명성의 시대》
 - 워렌 베니스 외 지음 / 배인섭 옮김 / 엘도라도

 

 

  플라톤은 국가에서 올바름이란 무엇인지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올바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하나하나 따져가는 그 여정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격언‘너 자신을 알라’는 단지 겸손과 무지의 표현이 아니었다. ‘돈과 권력’에 빠져들었던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오염된 나라를 깨끗하게 정화하고자 한 말이었다. 그러나 결국 아테나이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이미 결탁된 문화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왜곡시키고 은폐시키고자 법정 앞에서 그를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현혹한다는 죄를 씌어 죽음으로 내몰았다.


 《투명성의 시대》의 주제 ‘투명성’은 단지 깨끗함이나 공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관계의 문제이고 신뢰의 문제이며,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 자신 ― 개인 또는 조직 ― 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이 ‘투명성’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문제이지만, 그 어떤 시대보다 “사회 전반에서 아주 긴박한 이슈”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확립하는 것이 미래 사회와 조직의 비전이 되어야 함을 이 책은 주장한다.


 이 책은 1장 <투명한 조직과 사회 만들기>, 2장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 3장 <새로운 투명성> 이렇게 총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를 다 읽어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1장만 읽어도 충분히 이 책의 핵심을 꿸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투명성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물은 ‘정보의 독점 또는 은폐’의 문화이다. 우리는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거부하고 은폐·조작함으로서 조직의 신뢰 하락은 물론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대표적인 예이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음에도 기업들은 이를 은폐·조작하였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들만 취사선택하였다. 결과는 영유아 36명을 비롯하여 78명이 사망하였고 수백, 수천 명의 피해자들을 낳았다. 이와 유사한 예가 《투명성의 시대》에도 소개되고 있다. 미국의 의료기기 제작업체인 가이던트는 자사의 이식용 심장박동 제어장치가 전기적 결함을 일으킬 수 있고, 그것이 최소한 일곱 명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를 숨기고 자사의 제품을 계속 판매하였다. 결국 이 사건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고 이 회사의 신뢰도는 급락하여 경영에 큰 타격을 받았다.


 투명성을 가로막는 두 번째 장애물은 정보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조직의 구조이고, 세 번째 장애물은 ‘아지랑이 효과(shimmer factor)라고 불리는 것으로 조직의 리더들이 가진 권력과 불명예스런 행동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장애물은 명확히 구분하기보다 한 가지로 수렴된다. 바로 투명성을 가로막는 조직의 문화(또는 암묵적인 계율)이다.

 

“많은 조직들이 개방성과 정직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둔 멋들어진 언급을 늘어놓고, 때로는 조직의 사명선언서에 책무로서 그것을 명시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선언서들은 대개 조직의 진정한 사명을 기술하는 데 실패한 공허한 문서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선언서의 내용과 크게 다른 조직의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조직 구성원들 내면에 좌절감과 심지어 냉소를 유발하기도 한다.”(23쪽)

 

“꽤 많은 기업에서 직위가 비교적 낮은 직원의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이 고위직 임원일 경우에는 당연하게 인정되는 경향이 뚜렷하다.”(50쪽)

 

“대부분의 조직에는 암묵적인 계율이 존재한다. 그것에 준하여 조직원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지 결정한다.”(62쪽)

 

 우리는 투명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이 책의 글을 통해 또렷이 인식하게 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애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 장애물에 갇혀 투명성의 세계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장애물은 한 조직의 문화라기보다 사회 전반의 문화로 스며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리더들이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리더들이 직원들에게 “오로지 입 다물고 성실히 일만 하는 고분고분한 병사의 모습”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리더들이 조직을 민주화하고 자유롭게 직위에 관계없이 조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들이 앞장서지 않더라도 투명성의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이다. 조직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외부에 의해서 투명성을 강요받게 될 때, 그 조직의 신뢰는 이미 회복불가능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암묵적인 계율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계율을 벗어나 신뢰의 문화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당장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여럿’은 ‘하나’의 이상(idea)에서 기원해야 한다. 그 ‘하나’의 이상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거나, ‘하나’의 이상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청렴’의 길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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